제 750 호 몸을 기울여 서로에게 닿는 법,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비가 내리던 금요일 오후, <론 뮤익> 전시회를 보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인기 전시답게 전시장은 사람들로 붐볐고, 작품 하나하나 천천히 감상하기보다는 사진 찍는 사람들을 피해 빠르게 빠져나와야 했다. 날씨처럼 축축하고 우울해진 마음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우연히 전시 하나를 마주쳤다. 바로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이다.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소개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2025년 5월 16일부터 7월 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 1층 3, 4 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 다양한 몸이 주제인 전시로 ‹기울인 몸들›, ‹살피는 우리›, ‹다른 몸과 마주 보기›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다양한 몸과 살아가고, 기댈 수 있는 서로가 되는 방법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 포스터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해당 전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다. 다양한 작품 감상 방식을 환영하며(필요한 경우 전시 감상을 위해 소리를 내도 괜찮으며, 작품 중 일부는 직접 만져볼 수 있음.), 전시실 내에 휴식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모든 전시 작품의 설명은 쉬운 글로 이루어져 있으며, 직접 만져보며 공간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촉지도 3개와 9개의 작품에 대화형 해설이 준비되어 있다. 전시실 및 서울박스 공간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다.
[기울인 몸들]
-어떤 몸은 다른 몸보다 약하다고 여겨진다. 나이 든 몸, 아픈 몸, 장애가 있는 몸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공간에서는 다양한 몸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몸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기울인 몸들>은 '약한 몸'이라는 편견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사라 헨드렌와 케이트린 린치(신디 와크 가르니와 함께)의 [집에서 엔지니어링하기]이다. 심장마비로 다리와 손가락을 잃은 ‘신디 와크 가르니’의 이야기로, ‘신디’가 로봇 손을 쓰는 대신, 쉬운 기술로 혼자서 만든 물건을 소개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신디가 로봇 팔 없이 팔에 연결해서 쓰는 펜으로, 의수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해당 작품을 보며 장애가 정말로 약한 것인지, 그간 장애를 '약함'으로만 보았던 내 시선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기술보다도 강한 몸의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로봇 팔 없이 쓸 수 있는 펜 (사진: 김지연 기자)
[살피는 우리]
-모든 몸은 환영받아야 한다. 이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말과 몸짓, 건물, 도시, 미술관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상상한다. 이런 변화는
어느 한 명이 아닌 모두의 삶을 좋게 바꾼다.
<살피는 우리>는 미술,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몸을 환영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알레시아 네오 작가의 [땅과 하늘 사이]이다. 영상 작품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돌보는 이들의 경험을 담았다. 춤에는 누군가를 돌보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편안함, 슬프고 답답한 기분, 갑작스러운 상황에 바로 움직여야 하는 몸, 그리고 끝까지 돌보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다. 작품은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아래 사진은 어머니를 돌보는 62세 재닛 코 후이 켕의 사진으로, 부엌에서 보자기를 쓰고 있는 모습은 ‘돌봄은 무척이나 힘든 일의 연속이지만, 그 여정을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켕의 말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런 모습이 마음 깊숙이 다가와 저릿해졌다.
▲ 나의 돌봄 여정, 2018년 8월 16일 (사진: 김지연 기자)
[다른 몸과 마주보기]
-장애인, 노인, 이주민 등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강연, 공연, 모임이 이루어진다. 미술관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누구인지,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묻지 않는다. 다양한 몸은 사각형 무대에 둘러않는다. 몸과 몸이 이어지는 감각을 느껴본다.
<다른 몸과 마주보기>는 서로 다른 몸이
함께하는 공연과 모임을 선보인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최태윤, 연 나탈리 미크 작가의 [일하지 않는 움직임 / 이주하는 몸들]이다. 이주민의 몸을 다시 그리는 공연이다. 다른 나라에 온 이주민들은 종종 '일하는 사람'으로만 이해되곤 한다. 이주민의 몸도 쉬어야 하고, 아플 수 있으며, 돌봄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사실에 무관심해 보인다. 작가는 일하지 않는 이주민의 몸짓을 기록하고, 춤으로 몸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주민의 몸도 우리의 몸도 모두, 일하거나 무언가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게 공연은 보지 못하고, 전시 영상을 통해 공연 준비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영상을 통해 그간 이주민을 생각할 때 ‘일하는 사람'으로만 정의 내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다시 한번 이주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일하지 않는 움직임 / 이주하는 몸들] (사진: 김지연 기자)
기울인 몸들, 몸의 이야기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은 단순히 다양한 몸을 전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관람 이후에도 관객이 오랫동안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다양한 몸과 살아가고, 기댈 수 있는 서로가 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전시는 끝이 나도 끝나지 않는다. 관람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객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며, 서로 몸을 기울여 다양한 몸이 살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게 만든다.
김지연 기자